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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진 단편연재소설] 나비의 새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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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서유진 작성일19-09-0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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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서유진사랑의 고통은 다른 어떤 즐거움보다도 달콤하다.―J. 드라이든
 
개점 시간이 되었다. 유라는 중앙 홀의 조명등 스위치를 모두 올렸다. 클림트의 '키스' 조각상이 입은 황금 옷 빛이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유라는 여느 때처럼 조각상 앞에 섰다. 키스하는 남자의 얼굴이 궁금했다.

  여자의 얼굴에 머리를 숙이고 있어 남자의 정체가 은폐된 것처럼 보였다. 팔 안에 포근히 안긴 여자는 눈을 감고 있다. 여자는 분명 클림트의 영원한 연인 에밀리에 플뢰게이다. 미술평론가는 황금의 의미를 사랑의 고귀함과 영원성이라고 해석했다. 플뢰게를 바라보는 유라의 눈빛에 부러움이 가득하다.

  고객 중 누군가가 조각상이 조악하다 했을 때 유라는 좋기만 하다고 반박한 적이 있었다. 조악하건 말건, 무명작가의 작품이건 말건, 당신은 그만큼이라도 빚어낼 수 있느냐며 발끈, 했다. 유라는 키스하는 남자의 검은 머리를 쓰다듬고, 플뢰게의 눈이며 뺨이며 입술을 손가락으로 살살 문지르고는 이 층 탈의실로 올라갔다.

  제 이름이 붙은 붙박이장에서 검정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왼쪽 가슴에 포인트를 준 나비 금박이 검은 색 바탕 위에서 유난히 반짝거렸다. 탈의실은 휴게실 겸용이어서 방 한가운데 긴 소파 두 조를 갖춰놓았다. 여자들은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서 노닥거리며 고객을 기다렸다. 영업하기에 이른 시간이었다.

  유라는 창턱에 턱을 괴고 바깥을 구경했다. 비가 참 질기게 내렸다. 하나님이 세상을 다 쓸어버리려고 작정을 하셨나. 노아 시대처럼 사십 주야를 퍼붓는다면 저 오십 층 스카이월드 빌딩이 물에 잠기겠지. 구약시대의 대홍수가 눈앞에 펼쳐졌다. 끝장이 날 세상에서 방주를 준비하는 이 시대의 사람은 누굴까.
 
우산을 쓰지 않은 남자가 길 건너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란 불이 들어왔지만 남자는 뛰지 않았다. 장대같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고스란히 받으며 비를 음미하듯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 횡단보도를 건너왔다. 카페의 간판을 올려다보고 잠시 서 있었다. 진이가 짝사랑한 그 남자였다. 떠나버리면 그만인데 남자가 왜 여길 서성이는 걸까.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유라는 창문을 닫고 내려갔다.
 
"유라야, 진이 쟤 어쩌면 좋으니?"
탈의실 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 혜경이 맥없이 말했다. 
"언니, 신경 쓰지 마. 실연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야 아물어."
진이가 죽은 쥐처럼 부취를 풍기고 있었다. 휴머니스트 오너답게 혜경은 한 달 동안 이 층을 오르내리며 진이를 간호했다. 혜경과는 다르게 유라는 진이를 위로하지 않았다. 진이를 그리 만든 남자를 어떻게 추궁하나, 그것만 생각 중이었다.
 
그 날도 비가 내렸다. 어이쿠! 마수걸이 고객이 문을 열고 들어오다 바닥의 물기에 미끄러졌다. 남자는 바에 앉겠다며 유라에게 가방을 주워 달라고 부탁했다.

  큰 가방이 보기보다 가벼웠다. 옆면 아랫부분에 세모 로그로 FRADA라고 새겨져 있었다. 출퇴근용 가방치고는 너무 크지만 좋은 가방이라고 추켜세우자, 부피가 좀 큰 걸 넣어야 해서… 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자신감이 충만한 남자는 아닌 듯했다. 혹시 세일즈맨인가? 룸에도 들어가지 않겠다니, 바로 나가려나? 어딘지 병약해 보였다. 면도 자국이 귀밑에서 턱까지 파르스름했는데 이상의 '날개'에 나오는 주인공이 저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이틀만 수염을 깎지 않으면 무성한 털이 얼굴을 뒤덮을 것 같았다.

  유라는 그 순간 미녀와 야수를 떠올렸다. 미녀와 자신을 동일시한 것은 아니라면서 치기 어린 말을 뱉어냈다. 내가 뭐, 마법에 걸린 왕자를 기다리는 공주이기를 소망할 나이도 아니고, 루소가 말한 위험의 시기는 더더욱 아닌데 무슨 동일시? 그러나 루소가 유라의 뇌리에 따라붙었다. 루소는, 책 속의 주인공과 동일시해서 자기 이외의 다른 존재가 되길 더 원한다면 교육의 모든 것은 끝장이라고 '에밀'에서 말했다. 여기서 에밀이 왜 나와. 남자의 무성한 수염에 대한 상상이 지나쳤다고 자신을 나무랐다.  <계속>
소설가 서유진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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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